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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귀농교육 - 역동서원, 춘산에 눈 녹인 바람

woosanje 2012. 7. 14. 18:36

 

 

역동서원(易東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146호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학교 구내에 있는 박물관 뒤편으로 가보면 서원이 하나 있으니 바로 역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1570년 퇴계 이황의 발의로 고려 말기의 학자 역동(易東) 우탁(禹倬, 1263~134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역동은 중국에서 주역(周易)이 전해졌을 때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한 달여 만에 주역의 이치를 완전히 알아내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역동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1684년(숙종 10)에 사액을 받은 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969년에 현재의 장소에 복원하였다. 제향공간인 내삼문과 사당, 강학공간인 강당과 동∙서재 및 외삼문, 그리고 고직사(庫直舍)로 구성되어 있다.  

 

 역동서원은 안동지역 최초의 서원이며, 또한 조선시대 서원제도를 정착시킨 퇴계 이황의 서원 창설운동의 상징적인 서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서원 앞으로 다가서면 앞 마당의 바닥에 붉은 벽돌로 태극(太極) 팔괘(八卦) 무늬를 넣은 것이 보인다

서원 마당에 왜 역의 괘를 그렸을까?

우탁 선생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원 순제가 역을 보여주었고, 우탁 선생이 하룻밤 빌려 읽고

모두 암송하여 말하니, 순제가 말하기를 "아~ 역이 동으로 갔구나" 하여 역동이라는 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역동(易東)의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본명은 탁(倬)이며 자는 천장(天章) 혹은 탁보(倬甫)라 했고, 호를 단암(丹巖) 혹은 백운당(白雲堂)이라 했는데 세칭(世稱) 역동이라 부르고, 시호는 문희공(文僖公)이라 한다.

고려 원종(元宗) 4년(1263) 충북 단양에서 출생하여 안향(安珦)에게 수학(修學)하고, 17세에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어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에 임명된 후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고, 감찰규정(監察糾正),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등 요직을 거친 다음 벼슬을 버리고, 안동(安東) 예안(禮安)에 물러나 학문과 후진양성으로 여생을 마쳤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라 역동의 위상을 요약한다면,

첫째, 학문적으로는 한국 성리학의 역사를 열어 나간 선구자였고, 특히 역학의 대가로 추앙받았다.

둘째, 관료로서 과감히 미신을 타파하고, 군왕의 패륜행위를 바로잡기 위하여 지부(持斧) 상소(上疏)를 감행함으로써 후대관료의 귀감이 되었다.

셋째, 안동전통문화 속에서 역동은 도학(道學)-예의(禮儀)-절조(節操)[지삼의(知三宜)]를 상징하는 향토의 선현(先賢)이었다. 그로 해서 퇴계와 그 문도들에 의해 존숭 받았고 조선조 안동선비문화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넷째, 전통 시가문학사적 관점에서 안동지역은, 사대부가 치사(致仕)하여 도학적 관점에서 겪은 일을 우리말 시가로써 노래한, 강호가도(江湖歌道)를 창도한 곳이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중심으로 한 향토시가의 유풍은 역동의 높은 식견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고, 따라서 역동은 이 지역 최초의 시조작가로서 커다란 업적을 이룬 것이다.

 

- 우리 나라 시조의 효시 2수 - 

문 앞에는 시조의 효시인 우탁(禹倬)의 시조(時調) 두 수를 새긴 시조비가 서 있고, 그 시조를 새긴 빗돌 아래 기단에는 태극 팔괘를 가운데에 새겨두고, 왼쪽에는 “天地定位山澤通氣(천지정위산택통기)”, 오른쪽에는 “雷風相薄水火不相射(뢰풍상박수화불상사)”라고 새겨 놓았다.

 

비문에 보면, 우리나라 시조의 효시로 전해지는 역동 선생의 시조 2수가 있다.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어 간데 없다

저근듯 빌어다가 불리고져 마리 우혜

귀 밑에 해 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한 손에 가새들고, 또 한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새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그리고 주역 8괘인 건태이진 손감간곤 괘가 그려져 있고 주역 설괘전에 기술한 내용이 일부 새겨있다

설괘전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하늘과 땅이 위치가 정해지고 [천지정위(天地正位)],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고 [산택통기(山澤通氣)],

우뢰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뇌풍상박(雷風相薄)],

물과 불이 서로 꺼지지 않고 [수화불상사(水火不相射)],

팔괘(八卦)가 서로 섞인다. 가는 것을 셈하는 것은 순서(順序)요,

오는 것을 아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은 거슬러 셈하는 것이다.

 

 

도가에 이런 말이 있다

"천지인 삼재지도를 모르거든 막도문(莫道門) 하라"

 

역동서원에 들어가는 문은 입도문이니 누구나 도의 길에 들 수 있다

 

입도문 - 入道門

 

 

역동서원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명교단은 좌우에 1칸의 협실을 내었고 중앙에 대청을 두었다

동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화합 및 강론 장소로 사용된 서당이다

 

 

서쪽에 원생들의 기숙사인 서재(西齋) 현판은 삼성재와 광명실이니 퇴계 이황의 친필 현판이다.

광명실은 장서각이다.

삼성재(三省齋)의 뜻은

1. 남을 도와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 도와주었는가?

2. 친구와의 교재에 혹 신의 없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3. 스승에게 배운 것을 잘 익혔는가? 에 대한 세가지 반성하라는 뜻이다

 

동쪽 건물인 동재는 사물재이다.

 

四勿齋 의 뜻은

예가 아니면

1. 보지도 말고, 2.듣지도 말고, 3. 말하지도 말며, 4.행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명교당의 우측 협실이 정일재(精一齋)이니

뜻을 순일하게 하나로 모으라는 말이고

 

왼쪽 방은 직방재(直方齋)이니

언제나 곧고 발라야 한다는 뜻이다.

 

상현사 앞

 

상현사는 "고려성균관좨주단야우선생"이라고 쓰인 위패가 모셔진 역동선생을 위한 사당이다

 

동재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

 

명교단 뒷뜰

 

서재에서 바라본 동재 방향 풍경

 

고직사, 전사청 - 제수를 장만하고 보관하던 곳이며 서원을 지키는 고지기가 거처하던 곳

 

문을 나서는데 외국인 청년이 초등학생 열명 남짓을 대동하고 들어오더니

서당에 앉아 문답을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 선생이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와야 정상인 것 같은데...

역동 우탁 할아버지는 나의 21대 할아버지이다.

어릴 때 집안 어른이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네가 누구의 자손이냐?" 하고 물으면

"네, 역동 할아버지의 자손입니다"하고 대답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문득,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도다. 역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 64괘를 외우는 방법인 차서가를 소개한다.

건곤둔몽수송사

비소축혜이태비

동인대유겸예수

고림관혜서합비

박복무망대축이

대과감리삼십비

 

함항돈혜급대장

진여명이가인규

건해손익쾌구췌

승곤정혁정진계

간점귀매풍여손

태환절혜중부지

소과기제겸미제

시위하경삼십사

 

- 학교(안동대학) 안에 있는 학교(역동서원)를 보고나서, 宇山 우원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