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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기초용어 [30]

woosanje 2013. 5. 21. 21:41

서예 기초 용어

 

*아래에 소개하는 30개의 기초용어는 서예공부를 함에 있어 필수적으로 이해햐야 하는 용어입니다.

 

1.필봉(筆鋒)

 

붓털 중에서 뾰쪽하고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부분을 필봉(筆鋒)이라고 한다.

 

붓을 움직일 때 붓의 뾰쪽한 부분을 글자의 중심에 오게 하여 글씨를 쓰는것을 중봉(中鋒)이라 하고,붓 끝을 감추어 모서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을 장봉(章鋒)이라고 한다.

만약 붓 끝이 한 쪽으로 치우쳐진 상태로 글씨를 쓰게 되면 편봉(偏鋒)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간주한 모필의 탄력성은 필봉에 의하여 좌우된다.

필봉이 길면 길수록 탄력성도 풍부하고 먹의 함유량도 많아서 글씨를 쓸 대점과 획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붓을 움직일 때, 한 번 당기면 곧바로 되고 한 번 누르면 붓이 엎어지고 점과 획을 꺾고 누르고 글자사이의 종과 획을 교차시키며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도 모두 필봉의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예적인 측변으로 볼 때 용필(用筆)은 바로 필봉에 달려 있다.

붓 끝을 바로 하거나, 기울게 하거나, 거꾸로 하거나, 순하게 하거나,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거나, 실(實)하게 하거나, 허(虛)하게 하거나 등은 모두 필봉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중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며, 장봉으로 글씨를 쓰면 온후하고 중후한 맛이 나면서 뼈와 근육을 감출 수 있다.

역봉(逆鋒)으로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을 웅건하고 육중하게 할 수 있고, 노봉(露鋒)으로 글씨를 쓰면 정신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측봉(側 鋒)으로 글씨를 쓰면 험하고 기이한 맛을 나타낼 수 있다.

붓을 어떻게 쓰나냐에 따라 위와 같은 효과가 나오므로 각자 개성과 특성에 맞는 필법을 선택하여 쓰면 된다.

초학자들이 글 씨를 쓸 떼에는 하앙 붓 끝에 힘을 주어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을 제대로 주지 않고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이 미끄러져 판에 박힌 듯한 글자가 나오게 된다.

 

2.중봉(中鋒)

 

붓대를 곧바로 하고 붓 끝을 가운데로 오게 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중봉(中鋒)이라고 한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 끝이 항상 점과 획의 중앙에 위차할 수 있게 된다.

<서벌(書 筏)>에서도 "중봉을 운용할 수 있으며 퇴필로도 획을 둥글게 할수있고, 중봉을 하지 못하면

좋은 붓으로도 졸렬한 글씨를 쓰게 되니 글씨의 좋고 나쁨은 바로 중봉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중봉이 서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만, 현재 서법에서도 중봉은 꼭 지켜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을 일으키고, 엎어지게 하고, 누르고, 당기고, 보내는 변화를 쉽게 할수 있어 거기에 따라 나오는 점과 획에 다양한 변화를 창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강하고, 부드럽고, 굽고, 곧바로 된 획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으며 가로 세로의 획과 둥근획도 마음 먹은대로 표현 할 수가 있다.

만약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면 중봉을 운용하는데에 지장이 있어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에 오지 않게 된다.

 

중봉으로 붓을 쓰려면 먼저 붓 끝이 중앙에 위치하도록 자세와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 한다.

옛사람들의 경험을 근거로 살펴보면, 팔목은 세우고 붓끝은 똑바로하여 붓의 사면에 힘이 균등히 가게하여 항상 글자의 중앙에 붓 끝이 오도록 한다.

붓을 움직임에 있어서 머무를 때에는 사로잡는 듯하게,

나갈 때는 내보내는 듯하게, 거둘 때에는 긴장을 하는 듯하게,

넓힐 때에는 열어주는 듯하게 , 누를 때에는 내리는 듯하게,

당길 때에는 일어서는 듯하게 하면 붓이 왕래하는 사이에도 붓 끝은 항상 스스로 제자리 에 돌아와 중봉을 유지할 수가 있다.

중봉은 용필(用筆)의 관건이며 붓이 똑바로 서야만 골(骨)이 서 있게 되며 획이 풍부하게 되어 정신과 풍채가 비약할 수 있다.

서예는 획의 변화를 중요시 하는데 중봉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떠한 변화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초보자는 반드시 중봉을 유지하면서 글씨를 쓰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3.측봉(側鋒)

 

측봉(측봉)과 정봉(정봉)은 서로 반대되는 말로 붓을 움직이는 일종의 방법과 형식을 말한다.

측봉에 대해서 옛사람들이 많이 언급하였지만 그의 성질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주화갱(朱和羹)은 <임지심해(臨池心解)>에서 "정봉은 힘을 취하고 측봉은 연미함을 취한다.

왕희지가 쓴 <난정서(蘭亭敍)>에서 연미함을 취할 때에는 측봉을 사용하였다. 내가 가을철에 독수리가 토끼를 잡는 것을 보았는데 먼저 공중을 빙빙 돌다가 한쪽 날 개를 접으면서 뒤집듯이 쏜살같이 내려와 토끼를 잡는다.

이것을 보고 글씨의 경지를 깨달았는데 붓을 똑바로 잡고 곧장 내려오는 형세로 글씨를 쓰면 연미한 맛을 얻을 수가 없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측봉이 용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풍무(馮武)는 <서법정전(書法正傳)>에서 "지금 측봉으로 연미함을 취한다는 것은 모두 이단이다.

글씨를 배울때 사악한 외도를 취해서는 종신토록 이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게 되니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야 된다."라고 하였다.

풍무(馮武)는 이와 같이 측봉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였으며 심지어는 사악한 이단이라고까지 하였다.

이렇게 상반된 견해를 갖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측봉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측봉과 편봉을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일로 편봉이 절대로 측봉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른바 편봉이라는 것은 붓을 움직일 때 붓대를 비스듬히 하여 필봉(筆鋒)을 한쪽으로 가게 하고 붓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시켜 한쪽은 매끄럽고 한쪽은 톱니바국처럼 나게 하는 효과를 꾀하는 것이다.

먹물이 종이에 제대로 침투하지 않기 때문에 한쪽 면만 평평하고 나머지는 종이 위에 뜬 상태가 되므로 운필(運筆)에서 제일 꺼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퇴필(退 筆)이라고도 한다.

측봉에 대하여 <영자팔법(永字八法)>에서는 "기울인즉 붓을 평평하게 할 수는 없다. 기울일 때에는 마땅히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붓을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니 이는 기울어진 형세를 취한다는 뜻이 된다.

측봉으로 붓을 움직이면 과도하게 획을 돌릴 때 누운 붓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중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측봉으로 말하면 점과 같은 획은 모두 측법(側法)으로 쓰는 것이다.

심지어 '天·運·拘'와 같은 글자에서 삐침과 갈고리와 같은 획도 모두 측법에 속한다.

이렇게 붓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쓰면 물소뿔과 같이 날카롭고 단단한 획을 얻을 수 있으며 정신과 풍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까닭에 점과 획을 강조할 때에는 흔히 이러한 법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측봉과 정봉은 각기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특성을 보완하여 서예의 오묘한 맛을 나타 내여야 한다.

 

4.회봉(回鋒)

 

회봉(回鋒)이란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점과 획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오던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회봉은 점, 가로획, 세로획, 삐침 등의 모든 획에 적용되는 것으로 붓 끝을 버리지 않고 오던 방향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한 일(一)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붓을 거두는 곳에 이르면 조금씩 붓을 오른쪽 위로 향하게 하여 다시 한번 오른쪽을 가볍게 누른 뒤에 중간을 향하여 오던 방향으로 붓을 진행시켜 멈춘다.

세로획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붓을 거두는 곳에 이르면 왼쪽 위로 향하게 하여 가볍게 한번 들어서 다시 중간을 향하여 오던 방향으로 붓을 진행시켜 멈춘다.

회봉은 붓을 움직이는 작용으로서 점과 획을 원만하고 안온하게 가라앉혀 주면서 힘줄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여 획을 풍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회봉은 점과 획을 오던 방향으로 붓을 향하게 하는 것으로 조금도 번거롭지 않은 일이다.

초학자가 처음 해서를 임모(臨摹)할 때 회봉의 법칙을 지키지 않으면 점과 획이 원만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씨도 안온하고 장중한 맛을 나타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회봉은 초학자가 꼭 지켜야 할 사항인것이다.

회봉을 할 때 주의할 점은 붓을 움직이는 속도와 경중이다.

붓을 너무 빨리 움직이면 글씨가 가볍게 되쉬우니 마땅히 가볍고도 정성을 들여 장중한 맛이 나게 하여 한다.

 

5.절봉(折鋒)

 

절봉(折鋒)은 역봉(逆鋒)이라고도 하며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기필(起筆)할 때 필봉(筆鋒)을 거꾸로 하여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절봉은 기필할때와 글자 한 자에서 오른쪽 획을 시작할 때 흔히 사용한다.

가로획을 그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데 글씨를 쓸때는 먼저 거꾸로 붓을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기필의 장점에 이르러서는 아래로 향하여 한 번 눌러준 다음 다시 오른쪽을 향하여 나아간다.

세로로 내려 긋는 획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데 글씨를 쓸 때는 먼저 거꾸로 위를 향하게 한 다음 기필의 정점에 이르면 왼족 아래로 향하여 붓을 한번 눌러준 다음 다시 아래로 향하여 나아간다.

절봉은 글씨의 정신이 많이 나타나 노봉(露鋒)에 비하여 획이 육중하고 필력감도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초학자들이 임모(臨摹)를 하거나 해서(諧書)를 쓸 때에는 곡 이방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6.만호제력(萬毫齊力)

 

글씨를 쓸 때에 모든 붓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하는 것을 만호제력(萬毫齊力)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여야만 모든 붓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할 수 있는가?

먼저 붓이 손가락 가운데 있으면서 손가락의 간격은 조밀하게하여 그것의 힘이 필봉(筆鋒)에 직접 전달되야 한다.

그리고 진일보하여 팔의 힘과 어깨의 힘이 직접 붓 끝에까지 전달할 수 있으면 만호제력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만 팔의 힘과 어깨의 힘이 직접 붓 끝에까지 전달될 수 있는가?

팔과 손가락을 긴밀하게 하여 붓을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어깨도 움직이지 말아야 된다.

그런 다음 팔꿈치가 책상에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하며 이때 팔은 반드시 허공에 있어야만 붓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붓에는 완전히 팔의 힘이 전달되어진다.

또한 어깨의 힘과 손가락은 긴밀하게 하여 붓을 움직이지 않고 팔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팔과 팔꿈치가 평행되게 하면 붓에는 자연히 어깨의 힘이 전달되게 된다.

너무 강하게 하면 팔의 위치가 팔꿈치보다 높아져 힘이 어깨에 그대로 남게 된다. 또한 힘을 적게 쓰면 반대로 팔꿈치의 위치가 팔보다 높게 되어 힘을 붓에 쏟아붓는 형상이 된다.

여기서 아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 힘을 붓 끝에 전달시켜 만호제력을 이룩하느냐에 있다.

이에 대한 관건은 바로 글씨를 쓰는 사람의 운필의 기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오랜 숙련을 통하여 운필의 기교를 습득하면 자연히 힘을 붓 끝에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한낱 탁상공론에 불과할 따름이다.

 

7.역입평출(逆入平出)

 

역입평출(逆入平出)이란 운필의 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역입(逆入)은 낙필(落筆)을 할때 필봉(筆鋒)을 나아가려는 반대 방향으로 하여 종이에 대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만일 왼쪽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오른쪽으로 획을 꺾고, 오른쪽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왼쪽으로 획을 꺾고,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위쪽으로 획을 꺾어 장봉(藏鋒)의 형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평출(平出)은 붓의 운행에 따라 붓털이 쫙 펴져 나아가다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형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붓털이 종이 위에서 펴져 있을때 붓의 중심은 항상 획의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포세신(包世臣)은 이것을 '중선(中線)'이라고 하였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모든 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할 수가 있어 필세는 굳건하고 험악한 형태를 나타낼 수가 있게 된다.

역입평출은 좁은 의미로 말하면 예서(隸書)의 가로획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장봉으로 하고 끝날 때에는 붓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누에의 머리(蠶頭)와 제비의 꼬리(燕尾) 형태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초학자들이 만일 다른 서체에서도 역입만 하고 회봉(回鋒)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과 획이 힘이 없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평출을 다른 서체에 적용시키면 마치 붓을 거두어 들이지 않는 듯한다.

획을 운행하는 기본 법칙에는 모든 점과 획을 막론하고 일단 가서는 반드시 붓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원칙이다.

행서나 초서도 마찬가지나 자세하게 나타나지 아니할 따름이다.

따라서 평출에는 공중에서 붓을 거두어 들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붓은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뜻은 이르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절대로 평출에는 붓을거두어 들이지 않는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8.장두호미(藏頭호尾)

 

장두호미(藏頭 尾)란 용필(用筆)의 한 방법을 말한다.

채옹(蔡邕)은 <구세(九勢)>에서 "장두(藏頭)란 붓을 둥글게 하여 종이에 대는 것으로 붓의 중심이 항상 획의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다.

호미( 尾)란 점과 획이 다하는 곳에서 힘있게 거두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장두호미는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원래는 전서(篆書)에서 나왔으며 후인들이 이법을 따르게 되었다.

옛사람도 대부분 이것을 인정하였으니 만약 뼈와 힘줄이 드러나게 되면 병기운이 나타나게 되고, 붓을 움직일 때 곧바로 들어가서 곧바로 나오면 힘이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필력이 점과 획속에 있어야만 비로소 풍채와 정신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장두호미의 특징은 필봉을 안온하게 하는데 있다.

왕희지는 <서론(書論)>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힘줄은 존재하나 붓자국은 감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취는 없애고 실마리는 숨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점에도 항상 붓자국을 감춰야 하며 가로획을 그을 때에는 끝에서 붓을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되며, 세로획을 내려 그을 때에도 세우되 응축히키지 않으면 안된다.

매번 하나의 획을 그을 때에도 항상 세 번 붓을 꺾으며 점과 획에서 힘줄은 존재하나 뼈를 감추고 붓자국이 밖으로 드러나게 해서는 안된다.

 

9.무수불축(無垂不縮)

 

무수불축(無垂不縮)이란 용필(用筆)의 한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방법의 중요한 의미는 붓을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세워서 응축시켜 위아래가 호응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로획을 내려 그을 때 이미 위로 가서는 다시 내려오다 중간에 이르러서 획을 세우면 머리 부분이 둥글게 된다.

그 운필방법으로 필봉(筆鋒)을 거꾸로 하여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기필(起筆)의 정점에 이르면 왼쪽 아래로 가면서 가볍게 한 번 누른 다음 다시 아래로 운행한 뒤에 붓을 돌려 위로 향하게 하여 붓을 거둔다.

이때 세로획의 꼬리는 마치 이슬이 구슬처럼 매달린 형상이 되어야 한다.

무수불축이란 송(宋)나라 미원장(米元章)이 말한 것으로 그 의미는 세로획에 대하여 국한하였지만 어떤 획에도 이를 적용시킬 수 있다.

하나의 점과 획에도 반드시 세번의 꺾어짐이 있어야 하니 이러한 법칙과 무수불축은 서로 일맥상통한 다는것과. 이것은 또한 어떠한 획도 반드시 나아가서는 거두어 들어야 하고, 내려그을 때에는 응축됨이 있어야 한다.

만일 이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게 되면 점과 획은 판에 박힌 듯하여 생명이 없고 죽은 글씨가 되어 정신과 자태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수불툭의 서법은 붓을 운행함에 있어서 꼭 지켜야 할 기본 원리로 초학자들이 명심해야 한다.

 

10.무왕불수(無往不收)

 

무왕불수(無往不收)는 붓을 운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붓을 움직일 때 붓 끝을 반드시 감추어서나가며 나아갔다가는 다시돌아오게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가로획을 그을 때 평평하게 지나가서는 다시돌아와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글씨를 씀에 붓끝을 거꾸로 들어간 뒤에 종이에 대고는 붓털을 오른쪽으로 서서히 진행시키다 급히 돌아오게한다.

이것은 글씨를 쓸 때 지나간 자국을 남겨 곧바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고 회봉(回鋒)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무왕불수는 송나라 미원장이 말한 것으로 '무수불축(無垂不縮)'과 서로 일맥상통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이것을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유는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무왕불수는 무수불축과 마찬가지로 꼭 가로획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점과 획은 반드시 무왕불수와 무수불축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점과 획을 그으면 글씨가 온화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뼈와 근육이 풍만해진다.

무왕불수에는 실제로 붓을 거두는 방법(實收)과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방법(空收)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목적과 의의는 서로 같은 것이다.

실제로 붓을 거두는 방법이란 종이 위에서 쉽게 붓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는 것을 말하고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방법이란 종이 위에서 붓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자세히 감상하면 붓을 거둔 필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반드시 필력이 의도하는 대로 따라와 주어야 한다.

이상을 종합하여 말하면 무왕불수나 무수불축은 초학자가 반드시 깨달아 준수해야 할 방법으로 그냥 붓 끝을 평평하게만 써서 다시 돌아오지 않게 해서는 안된다.

 

11.잠두연미(蠶頭燕尾)

 

잠두연미(蠶頭燕尾)란 필획의 특징을 형용한 용어로 일반적으로 예서(隸書)의 가로획과 삐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서의 가로획에서 첫 부분은 누에머리(蠶頭), 끝부분은 제비꼬리(燕尾) 모양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법상에 있어서 가로획의 첫 부분을 지긋이 눌러 누에머리 모양을 만들고 파임에서 붓을 거둘 때 회봉(回鋒)을 한 다음 다시 가닥을 나눠 끝까지 함으로써 제비꼬리와 같은 모양을 만드는 것도 잠두연미라고 한다.

잠두연미의 특징은 날아 움직이는 기세를 취하는 것으로 예서의 획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예를 들어 가로획에서 먼저 오른쪽으로 붓을 일으킨 다음 왼쪽으로 향하여 나아가다 왼쪽 실마리 부분에서 다시 왼쪽으로 조금 경사를 기울여 내려가다 오른쪽 실마리 부분에서 한 번 누른 다음 필봉(筆鋒)을 펴서 다시 위를 향하여 몰아쳐 나아간다.

이와 같이 하여 형성된 가로획은 기복이 있으며 파도가 치는 듯한데 이것을 이른바 잠두연미라고 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필획은 예서에서 뿐만 아니라 '한간(漢簡)'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어떤 이는 안진경(顔眞卿)의 해서(楷書)에도 이와 유사한 필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학자들은 예서를 쓰지 않고 이러한 법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12.현침수로(懸針垂露)

 

현침수로(懸針垂露)란 서로 다른 세로획을 말하는 것으로, 세로획의 끝 부분이 침이 매달린 듯한 느낌이 들도록 뾰족하게 뺀 것을 현침(懸針)이라 한다.

여기에 비하여 수로(垂露)는 붓 끝을 뾰쪽하게 하지 않고 둥글게 하여 마치 이슬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필법을말한다.

이외에 전서(篆書)에서는 '현침전(懸針篆)'또는 '수로전(垂露篆)'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이양빙(李陽氷)은 <한림비론(翰林秘論)>에서 현침수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침(懸針)이란 필봉(筆鋒)을 먼저 펴고 붓대를 형세에 따라 진행시키다 갑자기 긴급하게 움직이면 붓털은 껄끄럽게 진행하여 마치 송곳으로 돌에 글씨를 쓰는 듯하게 된다.

또한 <금경(禁經)>에서는 마치 긴 송곳을 땅에 댄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세로획에서는 빼는 획과 머무르는 획을 잘 결정하여야 한다.

왕희지도 현침수로는 체제상 어려운 획이라고 하였으며 위부인(衛夫人)은 오래된 마른 등나무와 같다고 하였다.

<임지결(臨池訣)>에서는 현침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난정서(蘭亭敍)>에서는 년(年)자라고 하였다.

장경립(張敬立)은 갑(甲)자의 가운데 획은 마땅히 버리듯이 곧바로 빼어야 하며 사(事)자의 가운데 획은 곧바로 내려오다 갈고리를 해야 함으로 멈춰서는 안된다."

또한 같은 책에서 수로(垂露)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필봉과 붓대를 가지런히 내려오다가 붓대에 힘을 가하여 필봉을 응축시킨다.

그런후에 붓을 세워 힘을 최대한 주어 필봉이 머무르게 되면 거둘 준비를 한다.

이것을 둔필(둔筆)이라고도 하며 붓 꺾는 것을 제일 중요시 여긴다.

왕희지는 봄에 죽순이 돋아나는 형상과 같다고 하였다. 위부인은 이것을 옥로(玉露)라고도 하는데 전서(篆書)에서 출발하였으며 옥(玉)은 옛날에 귀한 비녀를 만들 때 쓰였던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현침과 수로에 대하여서는 위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부언 설명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후학자들은 반드시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이것을 알아 세로획을 그을때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올바르게 선택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침은 '甲·中·年'등에서 가운데 획을 말하는 것이고, 수로의 획은 '使·仁·博'등에서 왼쪽 변의 세로획을 말하는 것이다.

 

13.일파삼절(一波三折)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붓을 사용하는 한 방법이다. 파(波)는 서법에서 파임을 말하며 절(折)은 필봉(筆鋒)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법의 생동감과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서법 중에서도 이 일파삼절은 중요한 과제로 강조되어 왔다.

송익(宋翼)이 글씨를 배울 때 점과 획이 판에 박은 듯하여 생기가 없자 그의 삼촌인 종요(鐘繇)가 이것을 엄격하게 비판하였다.

후에 송익은 마음을 가라앉혀 이러한 잘못을 고쳐 매번 파임을 할 때마다 일파삼절로 획을 표현하였고,하나의 점을 찍을 때마다 필봉을 감추어 나아가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학자들은 점과 획을 할 때에는 변화와 생동감이 나도록 일파삼절의 법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만약 가로획을 그을 때 그대로 나아가기만 하여 돌아오지 않고, 세로획을 물을 내뿜듯이 죽 내려긋기만 하고, 파임을 멈춤이 없이 그대로획을 뺀다면 글씨는 판에 박은듯하여 생동감이 없게 된다.

점과 획을 나타낼 때에는 곧은 것도 있고 굽은 것도 있어 정신과 풍채가 날고 움직이는 듯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붓을 움직임에 빠르고 천천히 하고, 굽거나 곧게 하고, 필봉을 감추거나 나타나게 하고, 누르고 멈추고 꺾고 둥글게 하여야 하고, 가볍게 혹은 무겁게 하여 다양한 변화를 주어야만 생동감이 나타나게 된다.

 

14.방필(方筆)과 원필(圓筆)

 

방필(方筆)과 원필(圓筆)이란 붓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원필은 전서(篆書)에서 나온 것이고 방필은 예서(隸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 중에는 이 말을 부정하는 측도 있다.

호소석(胡小石)과 같은 사람은 "무릇 붓을 씀에 있어서 첫 부분을 방(方)과 원(圓)으로 구별하는데 이것이 서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원필이 전(篆)에서 나오고 방필이 예(隸)에서 나왔다는 것은 단편적인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자세하게 전·예(篆·隸)의 구별되는 점을 살펴 보면 용필(用筆)의 방원(方圓)보다도 글자 형체의 방원에서 기인되는 점이 더 많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도백(吳陶白)도 "전·예(篆·隸)의 구별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전서는 원전(圓轉)을 하며 예서는 방절(方折)을 함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구별법이 아니다.

최초의 갑골문자(甲骨文字)시대에는 전절(轉折)이 모두 방(方)이었다.

이것은 칼로 새기면서 글씨를 썼기 때문에 모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초기의 금문(金文)도 갑골문을 이어받아 전절을 하는 부분이 모두 모가 났었다.

따라서 근본적인 구별법은 바로 글자 형태의 짜임새와 변화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의 이러한 관점도 어떻게 보면 단편적인 면이 농후하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진전(秦篆) 등이 모두 원필을 위주로 하여 쓴 글씨이기 때문에 고리와 같이 둥근 맛이 나며, 예서는 방필을 위주로 하여 씌여진 글씨이기 때문에 힘이 있고 고졸하며 돌을 쪼개는 듯한 기분이 난다.

물론 어떠한 것이든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원필로 쓰든지 방필로 쓰든지간에 꼭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중봉(中鋒)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봉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전서는 원필로, 예서는 방필로 각각 글씨체의 특징을 나타 내었지만 주객은 분명하다.

방필과 원필의 구별은 바로 글씨의 형태가 다른데에 있는 것이지 어떤것은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되며, 그 둘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곽말약(郭末若)이 여기에 대하여 말한 것이 비교적 타당하다. 그는 말하길 "예서의 필의(筆意)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로 붓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예서는 역입평출(逆入平出)이 기본적인 필법으로 처음에 필봉(筆鋒)을 감추고 붓을 대고는 붓을 일으킬 때에는 필봉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잠두(蠶頭)와 연미(燕尾)의 모양을 만든다.

남북조(南北朝)의 비문이나 경서(經書)를 쓴 글씨를 보면 비록 이미 필봉을 거두었으나 여전히 방필을 사용하여 하나의 점과 획까지도 삼각형 모양의 전절을 하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예서의 필의를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방필과 원필은 붓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각각 예서와 전서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나 이러한 개념으로 글자의 형태에까지 영향이 미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점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15.질삽(疾澁)

 

질삽(疾澁)이란 용필(用筆)의 일종으로 옛사람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지탱한다는 의미로 '삽세(澁勢)'라고 하였으니 붓을 거꾸로 하여 밀고 나아가는 '역세(逆勢)'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목적은 붓이 매끄럽게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역세를 취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질(疾)에는 붓을 빨리 움직인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형세를 얻어 신속하게 움직여 용이 나는 것처럼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뜻이다.

물론 단순히 빠른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용필의 예술적 미의 효과를 고려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또한 붓을 빨리 움직이는 것은 옳으나 천천히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옛사람들은 삽(澁)도 지나치게 천천히 쓰면 안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너무 지나치게 천천히 붓을 움직이면 획과 점이 판에 박은 듯하게 되어 생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삽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이니 주의하여 의미를 생각하고 써야 한다.

채옹(蔡邕)은 <구세(九勢)>에서 "서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질이요 다른 하나는 삽이다.

질과 삽의 법을 깨우치면 글씨는 자연히 묘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질삽의 기교와 법도를 숙달하려면 팔에 힘을 바짝 주어 마음과 손이 서로 호응하게되면 빠른 획과 더딘획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16.견사(牽絲)

 

견사(牽絲)란 서예의 용어로서 획과 획 또는 글자와 글자 사이를 띠로 연결하는 것처럼 가늘고 미세한 획의 흔적을 말하는 것으로 '인견(引牽)' 혹은 '인대(引帶)'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견사는 붓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윗글자와 아랫글자 또는 먼저의 점·획과 나중의 점·획을 서로 연결하고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는 서예의 중요한 표현 수단이다.

견사의 힘은 단단하고 날카롭고 가늘면서도 탄력이 풍부한 획으로 행서나 초서에 가장 많이 쓰여지는 획이다.

따라서 이것은 위를 이어받아 아래에 전달함으로써 맥락이 통하도록 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

<서벌(書筏)>에서도 "근육을 연결하는 것은 힘줄에 달려 있고, 맥락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견사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견사를 임의대로 만든다면 세력을 잃기가 쉬워 골(骨)이 형성되지 않고,서로의 연결을 조작한다면 판에 박은듯하여 생동감이 없게 된다.

붓을 움직이고 보내는 과정에서 견사로써 서로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여 작품을 만든다면 유창하고도 힘이 있어 운치가 넘치는 작품을 제작할 수가 있다.

서예의 관점으로 볼 때 견사는 일종의 보조수단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하게 되며 작품의 정신과 풍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견사가 서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견사를 표현할 때에는 일정한 규율과 법칙이 있으니 이것의 거칠고 가는것을 세심하게 주의 하여야 하며 점과 획보다 굵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가늘지언정 굵어지는 점·획과 혼동을 일으켜 작품의 예술적 효과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17.옥루흔(屋漏痕)

 

옥루흔(屋漏痕)이란 서예의 용어로서 용필(用筆)의 방법을 형용한 말이다.

 

주리정(朱履貞)은 <서학첩요(書學捷要)>에서 "옥루흔이란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어 햇빛이 통과하는 곳으로 이곳을 쳐다보면 구멍이 모나게 혹은 둥글게 혹은 기울게 혹은 바르게 보이기도 하면서 형상은 밝게 보이는 것으로, 점과 획이 분명하고 맑아서 연결과 당김이 없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서법삼매(書法三昧)>에서는 "옥루흔이란 붓의 처음 시작과 끝의 흔적을 찾을수 없는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심윤묵(沈尹默)선생은 "안진경(顔眞卿)은 옥루흔을 중봉(中鋒)에 비유하였다.

 

빗물이 벽 사이에 스며들면 서로 엉기다가 모여 물방울이 되어 처음에는 서서히 흐르게 된다.

그때의 움직임은 곧바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죄우로 움직이다 비로소 곧바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이때 벽에는 물방울의 흔적이 생기는데 처음에는 둥글다가 획이 이루어지면서 방종의 의미가 많아지고 수렴의 의미는 적어진다."라고 하였다.

심윤묵 선생의 해석은 매우 명확한 것으로 옥루흔을 중봉에 비유하였으니 이는 세로획에 대하여 설명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붓을 움직일 때 한번에 내려긋지 않고 손과 팔의 힘을 때로는 왼쪽으로 때로는 오른쪽으로 주면서

붓을 눌러서 나아간다.

이는 마치 벽에 있는 물방울이 뱀이 꿈틀거리며 내려가는 현상과 같아서 획은 원활하고 생동감있게 표현된다.

만약 세로획을 위아래가 똑같게하여 곧바로 내려 그으면 하나의 나무줄기를 세워놓은 것 같아 속기가 나면서 생동감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글씨체를 쓰든지 점과 획은 반드시 가고 옴이 있어야 하며 머무르고 꺾는 의미가 담겨 있어야 비로소 기상있는 정신을 발휘할 수가 있게 된다.

 

18.절차고(折 服)

 

절차고(折 服)는 서예의 용어로서 둥글게 꺾는 획을 설명한 말이다.

강기(姜夔)는 <속서보(續書譜)>에서 "절차고란 굽는 획을 말하는데 둥글면서도 힘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주리정(朱履貞)은 <서학첩요(書學捷要)>에서 "절차고란 비녀의 다리를 분지른 것과 같이 둥글며서도 힘이 균등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꺾는 획을 할 때에도 붓털은 항상 평평하게 펴져 있고 필봉(筆鋒)은 바르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둥글면 일그러지지 않아서 마치 비녀의 다리와 같이 비록 분질러졌어도 형체는 둥근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붓을 사용함에 있어서 모두들 힘을 가하기는 쉬워도 둥근 것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획을 둥글게 하려면 장봉(藏鋒)을 위주로 하여야 하는데 전서(篆書)에서 그법을 얻을 수 있다.

 

전절의 용법에서 절(折)은 획을 끌고 전(轉)은 획을 꼬는 듯하게 한다.

<서벌(書筏)>에서 말하길 "전을 여러번에 걸쳐 하게 되며 절에 합하게 된다. 전은 둥근 모양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한 번 획을 꼬는 것과 동일하다.

만약 이것을 잘못 하용하면 병이 되지만 분별하여 사용하며 법과 합치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논법은 이와 같으니 전절을 할 때 이를 참고하여 시행하기 바란다.

 

19.획사인니( 沙印泥)

 

획사인니( 沙印泥)란 서예의 용어로서 용필(用筆)의 방법을 설명한 말이다.

황정견(黃庭堅)은 이에 대하여 "송곳으로 모래에 글씨를 쓰는 것[錐 沙]처럼 하며 인주로 도장을 찍는 것[印印泥]처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봉(筆鋒)을 감추고 뜻이 붓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추획사(錐 沙)란 말은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다

.

이 말은 송곳으로 모래에다 글씨를 쓰면 획의 양쪽이 솟아 나오고 획의 중간은 오목하게 들어가 하나의 선이 나오게 되어 서법에서 말하는 중봉(中鋒)이나 장봉(藏鋒)의 형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인니(印印泥)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인주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인주가 아니라 점착성이 강한 붉은 진흑으로서 밀랍 위에는 기록을 하고 붉은 진흙 위에는 도장을 찍는 것으로 오늘날 남아 있는 봉니(封泥)라고 전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이 인인니를 용필에 비유하여 자연스럽게 추획사와 같이 장봉과 붓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또한 인인니는 하나의 획도 헛되지 않다는 의미가 있으니 글씨를 씀에 온화하고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이와 같은 것을 볼때 획사인니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저절로 알 수 있다.

 

20.내엽(內 )과 외탁(外拓)

 

내엽(內 )과 외탁(外拓)에는 두 가지의 다른 설법이 있다.

첫째, 당나라 서예가인 노휴(盧携)는 지법(指法)이라고 하였다.

그는 <임지결(臨池訣)>에서 말하길 "붓에는 잡는 방법에 있어서 탁(拓)은 첫째 손가락, 엽( )은 셋째 손가락,염(斂)은 둘째 손가락, 거(拒)는 넷째 손가락의 작용을 말하며 손바닥은 텅 비게 하여 계란을 움켜쥐는 듯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둘째, 심윤묵(沈尹默)선쟁은 "후대 사람이 내엽과 외탁으로 이왕(二王)의 글씨를 구별하는데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즉 왕희지는 내엽이요, 왕헌지(王獻之)는 외탁이다.

시험삼아 왕희지의 글씨를 보면 강건하면서도 법도에 맞고 올바르고 흐르는 맛과 고요함이 있다.

이에 반하여 왕헌지의 글씨는 강하게 썼으면서도 부드러움이 나타나고 화려함은 착실함으로 인하여 더욱 드러난다."라고 하였다.

이상 두 가지의 관점으로 볼때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

심윤묵이 후인들이 내엽과 외탁으로 이왕(二王)의 글씨를 구별한다고 말한 것은 후인들이 전 사람의 인식을 기초로하여 지법 중에 엽과 탁으로 서예의 풍격을 설명한 진일보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왕희지가 내엽의 용필을 사용하여 획을 거두어 들였기 때문에 삼엄하면서도 법도가 있는 글씨가 되었다고 한다.

 

왕헌지는 외탁의 용필을 사용하여 활발하게 썼기 때문에 흩어지면서도 명랑하여 자태를 많이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본다면 내엽과 외탁의 진수에 대하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1.필위(筆位)

 

붓을 잡는 위치의 높고 낮음을 필위(筆位)라고 한다.

보통 붓을 잡을 때 붓대의 중간 정도 로 잡는다.

이때 필두(筆頭)에서 중간부분까지를 다시 3등분하여 필두에서부터 1분,2분, 3분 등으로 나누어진다.

붓을 잡는 위치에 따라 글자의 출력감은 다르게 나타난다.

당나라 서예가인 노휴(盧携)는 <임지결(臨池訣)>에서 "붓을 자는 위치가 종이에서 멀어지면 글자는 뜨고 허하게 되며,

가 까우면 붓 끝에 체중을 싣게 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서체(書體)를 쓰든지 무조건 붓을 높게만 잡는데 이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붓을 너무 높게 잡으며 기맥은 골 고루 될수있으나 힘을 붓 끝에 집중시킬수 없어 행필(行筆)이 온전치 못하고 손바닥으로 붓의 중심을 잡기가

곤란하다.

반대로 붓을 너무 낮게 잡으면 영활한 움직이을 구사할 수 없어 세력을 확장시킬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붓을 잡아야 적당한 것인가?

일반적으로 초서는 3분, 행서는 2분, 해서는 1 분으로 잡는 것이 적당하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자 기가 짐작하여 확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붓대를 3등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붓털도 필두(筆頭)를 기준으로 하여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붓 끝을

1분필이라고 하며, 중간을 2분필이라고 하며, 윗부분을 3분필이라고 한 다.

이것은 옛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결정한 것으로 그 목적은 글씨를 쓸 때 하나 의 기준을 삼기 위해서다. 필두는 비록 부드러우나 탄력성이

풍부하여 누르면 일어나고, 움 직이면 다시수습할 수있다.

그러나 만약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좋은 글씨를 쓸 수 가 없게 되므로 어떤 위치를 선택하여 쓰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그러면 붓의 어떤위치를 선택하여 쓰는 것이 가장좋은 것인가?

일반적으로 말하길 글씨를 쓸 대 붓의 허리 부분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더욱이 초학자들은 해서 혹은 전서나 예서를 쓸 때에는 1분반 내 지 2분필이 가장 적당하다.

 

이렇게 붓을 움직여서누르고 꺾고 끌고 잡아당기면, 힘을 적당 하게 주면서 형세도자연스럽게 취할 수 있다.

글씨를 쓸 때 가장 주의할 것은 붓의 윗부분 까지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점과 획이 정신과 모양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붓 끝으로 쓰게 되면 점과 획이 힘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 무 붓 끝으로 쓰게 되면 점과 획이 힘이 없게 되어 가볍고 경솔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붓털을 3분필로 나눔에 있어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

즉 붓털 이 뾰족해지기 시작하는 허리부분에서 붓 끝까지를 3등분하여 붓 끝에서 가까운 쪽에서부터 1분필, 2분필, 3분필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붓 전체를 3등분하여 필봉에서 부터 1분필, 2분필, 3분필이라고도 한다.

 

22.오지제력(五指齊力)

 

오지제력(五指齊力)이란 붓을 잡을 때 다섯 손가락의 힘이 모두 균등하게 붓대에 보내져 어느 손가락의 힘도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오지제력은 글씨를 씀에 있어서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다.

오지제력이 된 후에 비로소 팔 목·팔꿈치·어깨의 힘을 가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만약 손가락의 힘이 강하지 못하면 기타의 것도 장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지제력을 하려면 먼저 넷째 손가락의 힘을 길러 전체를 균등하게하여야 한다.

다음은 첫째 손가락을 옆으로 버팅겨 잡음으로써 네 손가락의 힘이 중심으로 향할 수 있으며

동시 에 각 손가락의 마디를 밖으로 돌출하게 하고 손가락 사이의 경중과 강약을 고르게 조절하 여야만

다섯 손가락의 힘이 균등하게 되어진다.

오지제력은 5형제와 같아서서로 협조하고 제약하여야만 비로소 강해질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다섯 손가락의 힘은 균등하게 되 어지지 않는다.

 

23.팔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붓을 자는 방법을 이해하였으면 다음으로는 팔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글씨를 쓸 때 손가락의 힘보다 더 중요한 팔의 힘 심지어는 어깨의 힘까지도 운용할 줄 알 아야 하기 때문이다.

팔을 움직일 때에는 팔목의 관절을 운용하여 글씨를 쓰게 된다. 그러나 팔을움직일 때에 는 손가락·팔꿈치·어깨·등·허리와 몸 전체의 배합작용을 떠날 수는 없다.

큰 글씨나작 은 글씨를 막론하고 모두 팔을 움직여 글씨를 써야 한다. 이것은 팔의 힘이 손가락의 힘보다 클 뿐더러활동범위도 넓고 조정의 폴도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붓을 들려고 하면 붓 끝에 힘을 주어 그 탄력으로 거두어 들이고, 붓을 누르려고 하면 붓 끝을 땅에 펴서 전개시 키면 된다. 손가락으로 운용하며

힘이 미약할 뿐만 아니라 범위도 좁아 단지 작은 글씨를 쓰기에마 적당하다.

그러므로 글씨를 쓸 때에는 충분히 팔의 힘을 운용하여 손가락의 힘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붓도 힘있게 되어 쓰여진 글시가 혈육이 포마하고 뼈와 힘줄 이 강하고 웅건하여 세력이

강하면서도 유창하게 된다.팔을 움직이는 동작은 곧 손바닥의 긑 부분을 움직이는 것이니 이 부분을 죄우로 움직임 에 따라 붓도 눌러지고

당기게 되고 꺾이게 되어 경중과 빠르기도 함께 변하게 된다. 따라서 움직이는 폭과 대소는 글씨의 크고 작음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움직이는 도중에 특별히 팔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뒤집으면붓은 자연히 끌리게 된다.

이와 같이 하며 붓은 손에서 활동이 자연스럽고 범위도 넓게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필획의 변화가 어떻든지 붓은 항상 곧바로 되게 하여 붓 끝이 항상 중심이 되도록 하는

중봉(中鋒)을 유지하여 전개하여야 한 다.행서나 초서를 쓸 때에는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팔의 동작도 특별히 나타나지마 해서는 유동성이 작기 때문에

동작도 비교적 완마하여 잘 나타나지 않는다. 글시를 쓸 때 한 획을 긋거나 하나의 점을 찍거나 할 것 없이 모든 획의 경중이나 속도는 바로 팔의 움직임에 달 려 있다. 따라서 팔의 움직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서예의 중요한 기교 문제다. 팔의 움직임으 잘하면 글씨도 정신과 풍채가 우러나오지마 이것을 잘못하면 직접적으로 그 영향 이 글씨에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초학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이니 반드시 많은 숙련과 실천을 쌓아

고도의 기교를 터득하여야 한다.

 

24.필력(筆力)

 

글씨를 쓸 때 필력(筆力)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요소다.

서예작품상으로 보거나 감상적인 측면에서 보거나 필력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제일 중요한 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이것을 가지고 일반 사람들은 힘이 있다 혹은 없다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힘이 좋이의 두를통과하여야 한다라는 말로필력의 굳건함을 표현하고 있다.

심개주(沈芥舟)는 <논필법(論筆法)>에서 "옛사람이 말하길 필력은 능히 솥을 들 정도가 되어야 하며, 기(氣)는 가라앉혀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붓을 댈 때에는 기를 위주로 하되 힘도 함께 이르러야 한다."라고 하였다.

당태종(唐太宗)도 "지금 내가 예사람의 글씨를 임서(臨書)함에 있어서 비록 그 형세는 배우지 못하지만 주력하는 것은 골력(骨力)을구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형세는 자연히 생길 것이 ."라고 하였다.

이러한 논법은 힘을 어떻게 보내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말은 없지만 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필력이란 현묘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품 중에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감상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글씨를 씀에 그방 터득할 수 있다. 필력의 강약을 표현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본기와 기교다.

연로한 서예가나젊은 작가 심지어는 아동들이라도 모두 필력을 추구하고 표현할 수 있다.

세련되고 박력이 있으며, 건장하고 힘이 있으며, 침착하면서도 무게가 있으며, 순박하고 무던하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필력을 표현한 말들이다.

또한 붓을 쓸 때 빠르고 더디게 하거나, 가볍고 무겁게 하거나, 점과 획을 거칠게 혹은 가늘게 하고, 또는먹색의 농담에 따라 변화를 주거나, 손가락·팔·팔꿈치·어깨 등의 힘을 운용하여 필력의 정도를 표현한다.

옛사람들은 항상 침착하면서도 통쾌한 것으로 필력을 형용하곤 하였다.

침착하다는 것은 글씨가 나부끼지 않는 것으로 붓에 먹물이 충분히 스며들게 하여 종이에 눌러쓰는 것을 말한다.

통쾌하다는 것은 필세가 유창하며서도 나는 듯하여 거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대조적이지만 통일체를 이루어야만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이 결합되어 생동감이 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손가락, 팔, 팔꿈치, 어깨 등의 힘이 붓 끝에까지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기교와 붓을 다루는 방법이숙달되어야 필력의 강약과 후박(厚薄)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필력이 어떻게 도달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논할 때 힘이 건장한 사람은 필력이 왕성하고 힘이 없는 연약한 여자는 필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필력의 관건은 바로 기교와 붓을 다루는 성숙도의 여부와 관계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붓을 댈 때에는 기(氣)를 위주로 한다고 하였으니 이점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글씨를 쓸 때에는 먼저 마음을 움직여야 하며 다음은 몸을 움직여 온몸의 힘이 어깨를 통하여 손가락에 전달되고 이것이 다시 붓 끝에 집중되어야 비로소 종이를 뚫는 듯한 필력이 나오게 된다.

강유위(康有爲)는 말하길 "온몸의 힘을 쓰려면 반드시 팔이 지면과 수평을 이루어야 하며, 붓은 지면에 수직으로 세워야 하며, 근육을 모르려 팔뚝이 어깨 안에 들어오도록 하여야만 온몸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필력의 실현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25.필세(筆勢)

 

필세(筆勢)란 운필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필법의 기초로 각기 다른 점·획의 자태로 위치를 확정하는 것을 말한다.

서예는 붓을 다루는 것을 중히 여기며 이것은 또 세력을 얻어야만 정신과 풍채가 갖추어진다.

필세는 본래 정법이 없으며 특징은 글씨를 쓰는 사람의 서로 다른 성격과 예술 추구에 달려 있다.

글씨를 쓰기 전에 먼저 어떠한 형세를 취할 것인가를 잘 생각하여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붓이 아직 지면에 도달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도 호흡은 멈추어야 하며, 붓이 이미 도달하도 호흡을 다 쉬지 말고 붓을 일으켜 원필(圓筆)이나 방필(方筆)로 끝까지 쓴다.

이때 획을 오므리거나 펴기도 하여 답답한 것을 유창하게 소통시키며, 두껍게 혹은 가늘게 하며, 길고 짧게 하며, 굽거나 곧바르게 하며, 둥글거나모나게 하며, 평평하거나 기울게도 하며, 공교하고 졸한 것도 섞이게 하며, 온화하거나 날카롭게 하는 등의 다양한 형세를 취한다.

왕희지는 <필세론(筆勢論)>에서 "대저 문장에 임하여 글씨를 쓰려고 할 때에는 여러 가지의 형세가 있는데 모두 같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점과획의 형세변화가 무궁하다는 것을 설명한 말이다.

그러나 초학자는 머저 가로획은평평하고 세로획은 곧게 하고, 모난 획과 둥근획으로 주위를 정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짜임새에 있어서는 윗획이 아래로 향하게 하고 아랫획은 위를 이어받은 듯이 하여야 하고, 붓을 꺾을 때에는 좌우가 분명하게 하여야 하고,획 사이의 간격과 여백을 여유있게 하여 먼저 안온한 형세를 추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험한 세력을 취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붓의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

필세에 있어서 눕고, 쳐다보고, 기대고, 기울고, 쏠리고, 바르고, 크고, 작고, 길고, 짧고, 멀고, 가까운 것 등은 물론이고 예술적인 면에서 높고 낮음에 따라 운치가 있어야 하며, 멀고 가까운 것이 서로 호응을 이루고, 성김과 빽빽함이 서로 어우러지고 모나고 둥근 것이 정비되어 변화를 이루어 형태가 끊겼으나 연속된 듯한 느낌이 나야 한다.

물론 기울고, 굽고, 곧고, 둥글게 하는 것들은 모두 형세를 위주로 하여 다양한 변화를 구하는 것이나 글자의 형태를 잃어서는 안된다.

필세의 바름과 기이한 것, 평이함과 험악한 것 등은 모두작가의 성격과 예술수양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바른 것이란 눕고 우러러보고 누르고 꺾고 들고 하는 획들이 서로 호응을 하며, 힘줄과 뼈가 위엄과 품위를 갖춰 자태가 드러나 공교한 맛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바름과 기이한 것, 평이함과 험악한 것들의 변증관계를 살펴보면 기이한 것은 바른 속에서 연결되며, 바르게 된 즉 기이한 것도 올바르게 보여지는 것이다.

만약 바르게 되었느데도 기이함이 없으면비록 장엄하고 착실하여 항상 후박한 느낌이 들지만 문기(文氣)는 적어진다.

또한 기이하기만 하고 바르지 못하다면 비록 상쾌하고 나는 듯하며서도 아름다워도 속임이 심하고 우아하지 못하다.

필세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말하면 어떠한 작품이라도 글자와 글자, 행과 행 또는 한 글자 안에서의 점과 획이 독립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들은 서로 연관을 맺으며 의지하고 호응하고 견제하여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바름과 기이함 또는 평이와 험악함의 예술적 효과는 바로 작가의 운필기교에 달린 것이지만 이중에 하나라도 빠져서는 작품에 생동감이 없고 비범한 경지에도 도달할 수 없다.

 

26.필의(筆意)

 

서예는 필법(筆法)과 필세(筆勢)를 중시하나 이보다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필의(筆義)다.

이것은 서예의 특징을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필의(筆義)란 무엇인가?

이것은 작가의 강렬한 사상과 정신세계 혹은 풍부한 상상력 등을 운필의 기교를통하여 각종 움직임·정신·풍취·기세 등과 웅건함·연미함·맑음·고박함·강함·거칠음 등을 지면 위에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함축시키는 것을 말한다.

서예의 묘는 사상과 감정을 비교적함축적이며, 추상적이고 잠재적으로 표현하여 무용, 음악, 시가(詩歌) 등과 같이 사람들로 하여금 음미하고 연상하게 하는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예술이다.

또한 이것은 작가의 사상을 글자라는 매개체와 조화를 이루면서 자기의 내재된 정감을 표현하는 예술인 것이다.

주성연(周星蓮)은 <임지관견(臨池菅見)>에서 "붓을 대기 전에 먼저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한다.

일단 붓을 지면에 대면 토끼가 뛰고 송골매가 떨어지는 듯하여 생각할 여유가 없다. 불이 떨어지면 필세는 강하게 하고 필봉을 앞세워 엎어지고 꺾고 제치고 누르고 머무르는데 억지로 하면 안된다.

마음이 바르면 기가 안정되고, 기가 안정되면 팔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된다.

팔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되면 붓이  정하게 되낟. 붓이 단정하게 되면 먹물이 집중된다.

먹물이 집중하게 되면정신이 모아져 삼라마상이 모두 눈앞에 있게 되어 뜻없이 글씨를 써도 모두 의미가 있게 되며, 법이 아니게 글씨를 서도 모두 법도에 맞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붓을 대기 전에 구상을 하여야만 비로소 의(意)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왕희지의 견해는 이것보다도 더욱 구체적이다.

그는 말하길 "글씨를 쓰려면 먼저 먹을 가면서 정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가라앉히면서 미리 쓸 글자의 크고 작음과 누운 획과 우러러보는 획, 평평하고 곧은 획, 진동과 맥락이 서로 연결하는 점 들을 잘 생각하여 뜻이 붓보다 먼저 있은 후에 비로소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라고 하였다.

구양순(歐陽詢)도 말하길 "하나의 획을 그을 때에는 다음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획까지도 생각하여 어떻게 이것을 연결시키고 호응되게 하여야 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법에서는 이를 의재필선(意在筆先)이라고 하며 다음에 올 문장을 미리 생각하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붓을 들기 전에 먼저 어떻게 쓸 것인지를 잘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필의를 형성하는 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명(明)나라 축윤명(祝允明)은 "기쁜즉 기가 화목하여 글씨도 너그러우며, 노한즉 글씨도 거칠고 험악하며, 슬픈즉 기가 우울하여 글씨도 오그라들고, 즐거운즉 기가 화평하여 글씨도 곱게 된다.

또한 정도에 따라 깊고 얕음의 차이가있어 그 변화는 무궁무진하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작가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기분에 따라 글씨도 다르게 나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석도(石濤)는 "글씨와 그림은 그 사람의 천성과 일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모두 제각기 다른 개성과 식견과 이해를 가지고 표현했기 때문에 거기서 나온 작품들은 서로 다른필의를 지녔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필의가 각각 다른 이유를 종합적으로 설명한 말이다.

시대에 따라 필의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각 시대 사람들의 취미와 정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예서(隸書)라고 하여도 한예(漢隸)와 진예(秦隸)는 현걱한 차이가 있다.

또한 진(晉)나라는 운취를 숭상하였고, 당(唐)나라는 법을 숭상하였고, 송(宋)나라는 필의를 숭상하였고, 명(明)나라는 자태를 숭상하였다.

그리고 역대 서예가들의 작품도 모두 서로 다른 필의를 지니고 있었다.

왕희지는 자형(字形)에서 향내가 나면서 편안하고 화목하고 마치 봄기운이 솟아나는 듯 기쁜 기운이 있다.

서호(徐浩)의 글씨는 성을 내며 돌을 깨는 듯하고 목이 말라 샘물로 달려가는 듯한 맛이난다.

이백(李白)의 글씨는 신선하고 수려하며 호흡이 맑고 정숙하며 세속의 먼지를 털며 표연히 사라지는 신선의 기풍이 담겨져 있다.

미원장(米元章)의 글씨는 용이 하늘나라로 날아가고 호랑이가 누워 있고 봉황새가 움츠리고 있는 듯한

호걸스러운 기풍이 있다.

글씨를 쓰고 있으면 글자들이 마치 그 사람을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들 정도로 글씨와 쓰는 이가 서로 닮았다.

왕희지의 글씨는 취한 속에서도 맑고 웅건한 기풍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서성(書聖)이라고 하였다.

안진경(顔眞卿) 글씨의 안온함은 천성에서부터 나온 것이고 정신이 깊고 넓고 커서 일가를 이루었다.

필의는 작가의 기교와 예술적 소질에서 기인된다.

그리고 그것은 붓 끝에서 온갖 변화를 추구한 뒤에야 비로소 자기의 정감과 함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의 풍격을 창출하기 위해서 먼저 잠시 다른 사람의 필의를 본받는 것은 단계적인 일이다.

그러나 늙도록 나의 것만 본받고 자기의 독특한 필의가 없다면 이것은 발전성이 없는 글씨가 되고 만다.

 

27.지백수흑(知白守黑)

 

지백수흑(知白守黑)이란 서예작품의 공간을 비유하여 설명한 말이다.

백(白)은 먹물이 닿지 않는 여백을 말하며, 흑(黑)은 먹물이 있는 곳을 말한다.

<서벌(書筏)>에서도 "먹물이 묻어 있는 것을 헤아려 경계를 이루고, 여백의 깨끗한 것으로 전체의 구성을 한다.라고 하였다.

작품 전체의 구성문제를 고려할 때 지백수흑(知白守黑)은 매우 중요하다. 글자와 글자 혹은 행과 행간의 성김과빽빽함이 분명하고 상하가 서로 호응하면서 맥락이 통하여 아름다움과 강렬한 예술감이 있어 감상자들로 하여금 무한한 맛을 느끼게 하며, 먹물이 있는 곳에서는 정신과 풍채를 먹물이 없는 여백에서는 의취를 느끼게 하는 것도지백수흑에 달려 있는 것이다.

등석여(鄧石如)는 "항상 여백을 고려하여 붓을 사용하여야지만 기이한 정취가 나올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서예의 여백을 강조한 말이다. 사실 잘된 작품을 보면 붓을 휘두른 곳에서 글씨의 정신과 풍채를 느낄 수있으며, 여백에서는 무한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이것은 단순히 흑과 백 또는 허와 실의 관계를 넘어서 붓이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정신은 존재하고 붓이 이미 도착하였더라도 기는 아직 다하지 않은 절묘한 경지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서예와 회화의 이치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

먹물이 닿지 않는 곳에는 정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허한 가운데에도 사물이 존재하고 있어 공허한 느낌을 주지 않으니 이른바 허한 것이 바로 실한것이라는 말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먹이 닿은 곳도 허한 획이 있어야 실한 가운데도 걱정이 없고 공활한 맛을 느끼게 하니 이른바 실한 것으로 허한 것을 구하는 것이 된다.

풍부한 경험과 능숙한 기교를 가지고 있는 서예가라면 이 지백수흑의 경지를 추구하지 않는 이가 없다.

물론 초학자가 당장에 이러한 경지를 깨우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항상 이점을 생각하고 꾸준히 연마한다면 멀지 않아 지백수흑의 높은 경지를 깨우칠 수가 있다.

 

28.향배(向背)

 

향배(向背)란 서예의 점과 획을 말하는 것으로, 글자에서 서로향하는 듯하고 혹은 등지는 듯하며 마치 사람이 쳐다보는형상을 하여 각각 글씨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강기(姜夔)는 <속서보(續書譜)>에서 "서로 읍하고 등을 지며, 왼쪽에서 발하고 으론쪽에서 응하며, 위에서 일어나고 아래에서 엎드리게 하여 점·획을 각각 이치에 맞게 베풀어 놓는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초학자에게 짜임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자(漢字)는 정방형의 글자지만 그것을 이루고 있는점과 획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은 서로 향하기도 하고 등지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고 왼쪽으로 가기도 하는 등 반드시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만약 글씨를 쓸 때 안배를 고려하지 않고 서로 배척하고, 간섭하고, 호응하지 않는다면 짜임새는 협조를 이루지 못하여 안온하고 중후한 맛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일률적으로 균등하게 쓴다면 판에 박은 듯하여 생동감이 없어지게 된다.

획을 안배할 때 능숙한 기교를 운용하여 합리적이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각각 정취에 맞게 한다면 사방이 호응되며 겸손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一'자를 쓸 대 양손의 획을 너무 곧게 쓴다면 향하고 등지는 맛이 없어 딱딱하게 되므로,

한 쪽 끝은 향하고 다른 쪽은 등지게 하여야만 서로 손님과 주인이 호응하는 형세를 이루어 자연스럽게 될 수 있다.

또한 '非'자에 있어서도 오른쪽의 세로획이 주인이 되고 왼쪽의 세로획은 객이 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 '劍'과 '斜'자에 있어서도 왼쪽으로 삐치는 획을 조금 더 길게 하여야 하며, '伐'과 '映'자에 있어서도 오른쪽으로 삐치는 파임을 길게 하여야 하며, '筆'과 '要'자에 있어서도 아랫부분을 좀 더 넉넉하게 하여야 하며, '懸' 과 '壁'자에 있어서는 윗부분을 크게 하여야 한다.

또한 삼수변이 있는 경우에 오른쪽에 위치한 부분이 많은 획을가지고 있을 때에는 삼수변을 조금 짧게 하여 전체를 감싸주는 맛이 나야 하며, 반대로 오른쪽 부분의 획이 적을 경우에는 삼수변을 좀 더 크게 하여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한다.

이외에 글자의 전체를 돌아보며 모이고 흩어지게도 하고, 오므리고 펼치기도 하고, 절하고 겸양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 모두 이치에 맞아야 하는데,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글시를 쓰는 중에 스스로 터득하고 모색하여 자기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9.소밀(蔬密)

 

소밀(蔬密)이란 짜임새와 여백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점·획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소(蔬)라 하며, 가깝게 떨어져 있는 것을 밀(密)이라고 한다.

서예에서 여백이라고 하면 글자와의 간격, 행간의 간격, 점과 획 사이에 이루어지는 허실(虛實),즉 향하고 등지는것, 기울고 바른 것, 펴고 오므리는 것 등에서 나타나는 성김과 빽빽함을 말하는 것이다.

서예는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정신과 풍채를 표현하고 서로 다른 운치를 나타내어 예술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평면예술이다.

짜임새와 여백과 성김과 빽빽함은 직접적으로 작품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빽빽하게 하려고 할 때에는 엉성하고 쓸쓸하게 되지 않도록 하여 정신과 풍채가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싱긴 곳에도 빽빽한 풍채가 있어야 하며, 빽빽한 곳에도 성긴 맛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긴곳에서도 공허하고 한산한 느낌이 들지않으며, 빽빽한 곳에서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게 된다.

강기(姜夔)는 <속서보(續書譜)>에서 "글씨는 성긴 것으로 풍채를 삼고 빽빽한 것으로 원숙한 결지를 이룬다.

예를들어 '佳'자에서 4개의 가로획,'川'자에서 3개의 세로획,'魚'자에서 4개의 점,'畵' 자에서 9개의 가로획등은 움직이는 듯하여야 하며 성김과 빽빽함, 멈춤과 누름이 골고루 조화되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글씨가 될 수 있다.

성기어야 할 때 성기게 하지 않는다면 초라하고 답답하게 된다.

빽빽하여야 할 때 빽빽하지 않으면 엉성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짜임새에 있어서 소밀의 법도를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확실히 '川'자에서 3개의 세로획, '魚'자에서 4개의 점은 성기게 하여야 하는데 만일 빽빽하게 한다면 답답하고 초라하게 될 것이다.

등석여(鄧石如)는 이것을 비유하여 말하길 "획의 성긴 곳은 말이 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며, 빽빽한 곳은 바람도 지나갈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초학자들이 만일 성김과 백백함이 조화를 이루고, 멀고 가까움이 어울리고,높고 낮음이 정취를 이루고,허한것과 실헌 것이 호응을 이루게 하려면 모름지기 평소에 옛사람들의 묵적과 법첩을 자세히 관찰하여 익숙하게 한 다음 기교를 연마한다면 그 묘를 다할 수있을 것이다.

 

30.음양(陰陽)

 

음양(陰陽)이란 서예의 점과획을 말하는 것으로 예를들면 가로획에 있어서 윗획을 양(陽)이라고 하고 아랫획을 음(陰)이라 하며, 세로획에 있어서서는 왼쪽획을 양이라 하고 오른쪽의 획을 음이라고 한다.

위에서 설명한 것은 단지 음양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이런 것들만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유희재(劉熙載)는 <서개(書槪)>에서 "글씨를 쓸 때에는 음양의 두 가지 법칙을 겸비하여야 한다.

대저 가라앉아 있으면서 굴복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을 음이라 하며, 기발하고 호탕하고 활달한 것을 양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음양의 뜻을 진일보하여 서예의 풍격과 특징에까지 확대하여 설명한 말이다. 사실 글씨를 슬 때에는 두 가지의 기운이 겸비되어야 한다.

첫째는 고상한 풍격과 정신이 담겨 있어서 글씨로 하여금 힘이 착실하고 기운에 여지가 있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여지는 반드시 착실함에서 구해야지 종이 위를 떠나서는 안된다.

둘째는 바탕이 견실하면서도 호탕한 기운이 있어야하며 생각과 마음은 정미한데까지 이르러야 박력이 커질것이다.

정미하다는 것은 글자의 안에서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을 말하며, 박력이 크다는 것은 글자의 밖에서 기세가 드높은 것을 말한다.

만약 음양 중에서 하나만을 추구하여 쓴다면 절대로 훌륭한 글씨를 이루지 못하니 이 양자의 특성을 조화시켜야만 비로소 참다운 작품이 될 것이다.

음양의 두 가지를 겸비하려면 착실한 공부도 필요하지만 예술적인소질이 더욱 필요하다.

역대 서예가들을 보면 이 두 가지를 겸비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초학자들도 이것에 유의하여 노력하기 바란다.

 

[출처 : 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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